책소개
슈니츨러는 1900년에 <윤무>를 자비로 200권을 인쇄해서 비매품으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친구들은 이 작품에 대해서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루돌프 로타어는 이 작품의 은밀한 매력을 열렬히 기뻐하며 읽었고, 사랑의 헐떡거림 속에서 인간본성에 대한 풍자를 간파한 알프레트 케르는 이 작품의 ‘야릇한 힘’을 슈니츨러의 새로운 문학경향으로 보았다. 원래 이 작품의 제목은 <사랑의 윤무>였는데 케르가 <윤무>라고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제목을 줄였다고 한다. 케르는 슈니츨러의 이 작품을 ‘소 데카메론’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슈니츨러는 성관계를 키스나 포옹으로 암시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등장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통해 사랑놀이의 책략을 보여 준다. 열 개의 사랑 장면 다음에 무대는 암전되고, 섹스 장면은 대본에 점선으로 표시된다. 그다음 등장인물은 환상에서 깨면서 가벼운 양심의 가책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모든 등장인물은 다음 장면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발견한다. 슈니츨러는 길지 않은 문장, 짧은 상황 스케치로 등장인물과 그 인물의 사회적 배경, 역할을 성격화하며 순간적인 성적 만족을 원할 경우 사랑을 꾸며 대고 사랑에 대한 동경에 빠지게 한다.
이 작품이 소송까지 휘말리게 된 이유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루어지는 성적 행위를 무대에서 보여 주려 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의 드라마 장르에서 혁신적인 착상이었다. <윤무>가 당시에 그토록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작품의 외설시비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묘사하는 정확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0자평
창녀와 군인, 군인과 방 청소하는 하녀, 하녀와 젊은 남자,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 젊은 여자와 남편, 남편과 귀여운 소녀, 귀여운 소녀와 작가, 작가와 여배우, 여배우와 백작, 백작과 창녀의 대화가 각 장을 이루는 대화극이다. ‘섹스’를 무대에서 재연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실은 현대인의 모습을 정교하게 묘사하며 사회 전반의 위선을 드러내고 있는 풍자 가득한 작품이다.
지은이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 1862∼1931)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부유한 유태인 의학교수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부친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의학을 공부해서 의사가 되었다. 1886년부터 병원에서 일했고 1893년에는 자신의 병원을 개업했으나, 생의 대부분을 작가로 활동했다. 작품 활동 초기에는 주로 희곡을 집필했으며, 후고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 1874∼1929)과 친구였고, 스스로 자신의 ‘정신적 도플갱어’라고 칭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기법을 많이 사용했다. 대표적인 희곡으로는 <아나톨(Anatol)>, <사랑의 유희(Liebelei)>, <윤무(Reigen)>, <광활한 땅(Das weite Land)>, <베른하르디 교수(Professor Bernhardi)>를 들 수 있다. 만년에는 희곡보다 소설을 썼으며 대표적인 단편소설로는 <구스틀 소위(Leutnant Gustl)>, <엘제 양(Fräulein Else)>, <야외로 가는 길(Der Weg ins Freie)> 등이 있다.
그는 오랫동안 도나우 왕정의 퇴폐를 묘사하는 작가로 낙인 찍혔으며 모든 작품에서 당시 빈의 세기말적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어서 풍속 묘사가로, 그의 문학은 오락 문학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슈니츨러의 문학에 대한 이러한 평가절하는 무대를 사회비판의 장으로 바꾸어놓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사회변혁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다는 인식 때문이다. 1960년이 지나서야 슈니츨러는 사회전통의 압박, 소외, 고독, 자유와 헌신, 거짓과 실제에 대한 갈등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작가로 평가되었으며 체호프처럼 위대한 인간묘사가의 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1914년까지 슈니츨러의 희곡은 오토 브람(Otto Brahm)의 연출로 빈 부르크테아터뿐만 아니라 베를린극장에서도 가장 많이 상연된 작품에 속한다. 슈니츨러는 1931년 사망할 때까지 멸망한 사회의 연대기 작가로 평가받았는데 이는 그가 뒤늦게 단편소설 쪽으로 방향을 돌렸기 때문이다. 1960년경에야 비로소 연극 감독인 아들 하인리히 슈니츨러의 활약으로 슈니츨러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옮긴이
최석희는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독어독문학 전공)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Die unverkaufte Braut≫, ≪그림동화의 꿈과 현실≫, ≪독일어권 여성 작가≫(공저), ≪독일 문학 그리고 한국 문학≫, ≪멈추어라 너 아름다운 순간이여≫, 역서로는 폴커 브라운의 ≪힌체와 쿤체≫, 겐테의 ≪겐테의 한국 기행≫, 실러의 ≪오를레앙의 처녀≫, ≪메시나의 신부≫, ≪데메트리우스≫, 한스 벤더의 ≪늑대가 돌아온다≫, ≪내 동생≫, 슈니츨러의 ≪윤무≫, ≪아나톨≫, ≪초록 앵무새≫ 외 다수가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3
창녀와 군인··················5
군인과 방 청소하는 하녀············13
방 청소하는 하녀와 젊은 남자··········23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33
젊은 여자와 남편···············57
남편과 귀여운 소녀··············71
귀여운 소녀와 작가··············93
작가와 여배우················109
여배우와 백작················125
백작과 창녀·················143
해설····················155
지은이에 대해················166
옮긴이에 대해················168
책속으로
젊은 남자: 삶이란 이렇게 공허하고 이렇듯 허무하고-그리고-이렇듯 짧고-이렇듯 끔찍할 정도로 짧지! 단 하나의 행복만 있을 따름이지…. 사랑해 줄 사람을 발견하는 일?